'임을 위한 행진곡' 백기완 통일운동가 영면‥향년 89세

한국 진보운동 '큰 어른' 영결식…'사회장'으로 19일 엄수 김선일 기자l승인2021.02.15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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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1992년 대선서 민중후보 출마…이후 통일문제연구소 설립 통일운동에 헌신

[서울투데이=김선일 기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투병 끝에 15일 영면했다. 향년 89세. 

▲ 한국 민중·민족·민주 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향년 8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자료사진]

서울대병원에 따르면 백 소장은 지난해 1월 폐렴 증상으로 입원해 투병생활을 이어왔던 것으로 알려졌으며, 이날 오전 병세를 이기 못하고 결국 별세했다.

그는 1932년 황해도 은율군 동부리 출생으로, 1950년대부터 농민과 빈민운동 등 한국 사회운동 전반에 적극 참여했다. 1960년대에는 한일협정 반대 투쟁을 계기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었다.

백 소장은 1967년 통일문제연구소의 모태인 '백범사상연구소'를 세웠으며, 3선 개헌 반대와 유신 철폐 등 활동에도 참여했다. 1974년에는 유신헌법 철폐 100만인 서명 운동을 주도한 혐의(긴급조치 위반)로 투옥됐다. 1979년 'YMCA 위장결혼 사건'과 1986년 '부천 권인숙양 성고문 폭로 대회'를 주도한 혐의로도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이후 1987년 대통령 선거에서는 독자 민중후보로 출마했지만 김영삼·김대중의 후보 단일화를 호소하며 사퇴했고, 이후 1992년 독자 민중후보로 다시 대선에 출마했다.

대선에서 낙선한 백 소장은 이후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뒤, 자신이 설립한 통일문제연구소에서 통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지원했다.

백 소장은 창작활동에도 힘을 썼는데, '장산곶매 이야기'와 '부심이의 엄마생각' 등 소설과 수필집을 펴내기도 했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정숙씨와 딸 백원담(성공회대 중어중국학과 교수)·백미담·백현담, 아들 백일씨가 있다.

백 소장의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1호실에 차려졌다. 발인은 19일 오전 7시다.

▲ 한국 민중·민족·민주 운동가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15일 향년 89세의 일기로 별세했다. 이날 서울 종로구 서울대학교병원 장례식장에 고인의 영정사진이 놓여 있다.[자료사진]

김선일 기자  press@sul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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