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태요건 '임신 24주 이내' 대폭 완화‥여성계 "전면 폐지가 마땅"

지정기관 상담·숙려기간 거쳐야…사회경제적 사유 입증 간주 이미영 기자l승인2020.10.07 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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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주내 낙태 허용' 입법예고…'시기 제한' 논란 예고
"주수 제한은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취지에 배치" 비판도

[서울투데이=이미영 기자] 정부가 임신 초기인 14주까지 임신중단(낙태)을 허용하는 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 모두를위한낙태죄폐지공동행동 관계자들이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문화회관 앞에서 '낙태죄' 완전 폐지 촉구 기자회견에 앞서 퍼포먼스 예행연습을 하고 있다.

임신 중기에 해당하는 15주∼24주 이내에는 성범죄로 인한 임신이나 임신부 건강의 위험 등 사유가 있을 때 낙태를 허용하기로 했다. 다만 낙태죄를 폐지하는 것은 아니다.

법무부와 보건복지부, 식품의약안전처는 7일 이같은 내용을 담은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정부가 이날 입법예고한 낙태 허용규정 신설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보장하라는 헌법재판소의 주문을 따른 것이다.

헌재는 지난해 4월 낙태 행위를 처벌하도록 규정한 형법 269조(자기낙태죄)와 형법 270조(동의낙태죄)에 대해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침해해 헌법에 위배된다며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그러면서 2020년 12월31일까지 낙태죄 관련 법 조항을 개정하라고 요구했다.

◇ "임신 14주까지 태아 덜 발달…안전한 낙태 수술 가능"

정부는 이번에 형법과 모자보건법을 개정하면서 임신한 여성의 임신 유지·출산 여부의 결정 가능 기간을 '임신 24주 이내'로 설정해놓고, 이를 다시 임신 14주·24주로 구분했다.

일단 임신 14주까지 일정한 사유나 상담 등 절차요건 없이도 임신한 여성 본인의 자유의사에 따라 낙태를 결정할 수 있도록 한 것은 헌재의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헌재는 임신 14주까지는 "태아가 덜 발달하고, 안전한 낙태 수술이 가능하며, 여성이 낙태 여부를 숙고해 결정하기에 필요한 기간"이라며 이 기간에는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을 최대한 존중할 수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임신 15∼24주 이내는 사유가 있는 경우 낙태가 가능하도록 했는데 이는 현행 모자보건법의 낙태 허용 기준을 적용한 것이다.

현행 모자보건법은 임부나 배우자에게 유전적 질환이나 전염성 질환이 있는 경우, 성범죄에 따른 임신이나 근친 관계 간 임신, 임부의 건강이 위험한 경우만 임신 24주 이내에 낙태를 허용한다.

입법예고안은 여기에 사회적·경제적 사유까지 추가해 24주 이내 낙태 허용 범위를 확대했는데, 이 역시 헌재의 주문사항이다. 이를 놓고 24주까지는 낙태를 전면 허용한 것이라 해석도 나온다.

정부는 사회적·경제적 사유로 낙태를 할 경우 정부 지정 기관에서 상담을 받고 24시간의 숙려기간만 거치면 사회적·경제적 사유를 입증한 것으로 간주하기로 했다.

이를 위해 보건소와 비영리법인 등에 임신·출산 종합상담기관을 설치·지정해 임신의 유지 여부에 관한 사회·심리적 상담을 제공하고, 상담사실 확인서도 발급할 수 있게 했다.

법무부는 "태아의 생명 보호와 임신한 여성의 자기결정권 실현을 최적화하기 위해 상담·숙려기간을 거치게 했다"며 "상담·숙려기간을 거친 경우 사회적·경제적 사유가 있는 것으로 추정해 사유 입증 관련 논란을 방지했다"고 설명했다.

▲ 정부가 현행대로 낙태죄를 유지하되 임신 초기인 14주까지는 낙태를 허용하는 내용의 형법·모자보건법 개정안을 7일 입법 예고한다.

◇ "'여성의 자기결정권 보장' 취지에 못 미쳐" 비판도

일각에서는 낙태를 조건부 허용하면서도 낙태죄는 존치한 정부의 입법예고안이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의 취지에 못 미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법 개정 후에도 24주가 지나 낙태한 여성은 처벌받는 만큼 여성의 실질적인 자기결정권을 보장하지 못한다는 주장이다.

박수진 법무법인덕수 변호사는 "입법예고안은 헌재가 가장 근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여성의 실질적인 권리보장' 차원에서 입법하라는 취지에 반한다"며 "헌재는 형사처벌이 능사가 아니고 실효성도 없이 여성의 권리만 침해한다는 판단을 내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헌재 결정 이후 1년 넘게 낙태죄 없는 시간이 흘렀지만, 걱정과 달리 무분별하게 낙태가 벌어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며 "이제 와서 24주 이상 낙태는 처벌하겠다는 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서지현 검사(법무부 양성평등정책 특별자문관)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주수 제한 내용의 낙태죄 부활은 형벌의 명확성, 보충성, 구성요건의 입증 가능성 등에 현저히 반하는 위헌적 법률 개정"이라고 비판했다.

앞서 법무부 자문기구인 양성평등정책위원회는 형법에서 낙태죄를 폐지해 여성의 임신·출산에 관한 자기 결정권을 보장하라고 권고한 바 있다.

반면 김천수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낙태 허용 사유에 사회·경제적 사유를 추가한 것은 헌재 결정대로 낙태를 허용한 것"이라며 "24주면 임신 7개월인데 일부 주장처럼 그 이후에도 낙태를 허용하자는 것은 태아 살인을 합법화하는 것으로 위헌"이라고 주장했다.

◇ '낙태 허용' 국가들 대부분 일정 기간만 낙태 허용

이미 낙태를 합법화한 해외 사례를 보면 대부분 국가들이 우리 정부의 입법예고안처럼 일정 기간 내에서만 낙태가 가능하도록 조건부로 허용하고 있다.

미국은 임신 후 첫 3개월까지 낙태가 가능하며 다음 3개월까지는 제한적으로 할 수 있다.

일본은 1948년부터 낙태를 허용했는데 낙태 시술 지정 병원에서 시술받아야 하고 해당 병원은 시술을 정부에 보고해야 한다.

영국은 의사 두 명의 동의 아래 임신 24주 이내 낙태를 허용하며, 24주 이후는 산모의 건강, 심각한 기형 등 예외적 사유가 있을 때만 낙태를 인정한다.

아이슬란드는 임신 16주까지, 스웨덴은 18주까지, 네덜란드는 22주까지 낙태가 가능하다.

국민 대다수가 천주교 신자로 낙태를 엄격히 규제했던 아일랜드는 2018년 임신 12주 이내의 낙태를 제한적으로 허용하는 '임신중절법안'을 가결했다.

이미영 기자  press@sul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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