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환자 아내 인공호흡기 뗀 남편‥"편히 쉬어, 죄는 내가"

"살인 혐의 국민참여재판서 징역 5년…배심원 '유죄' 만장일치" 김선일 기자l승인2020.09.10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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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고인 "소생 희박·병원비 부담"…검찰 "연명치료 일주일 불과"

[서울투데이=김선일 기자] 충남 천안시 한 병원 중환자실에는 지난해 6월4일 중국 교포 이모(59)씨는 힘없이 축 늘어진 채 벤틸레이터(인공호흡장치)에만 의지해 연명하던 아내(56)가 세상을 떠났다.

▲ "연명치료 중단해도 사망까지 진료 병원비는 내야" [자료사진]

"여보, 편히 쉬어. 죄는 내가 다 안고 갈게", "엄마는 편하게 보내자. 죄가 된다면 내가 안고 가마"

이 같이 '죄는 자신이 다 안고 가겠다'는 남편의 혼잣말을 끝으로 인공호흡기를 뗀 뒤 불과 30분 뒤 아내는 저산소증으로 숨졌다.

이에 살인죄로 불구속기소 된 남편 이씨는 10일 법정에 섰고, 국민참여재판에서 징역 5년을 선고받아 법정구속됐다.

이씨에게는 과연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 요양보호사로 일한 부부 "내가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는 하지 마"

이씨는 아내와 1985년 중국에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치매를 앓는 아버지를 수발하느라 힘들었지만 이겨냈고, 슬하에 아들과 딸을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한국에는 아내가 2016년 먼저 입국했다. 이씨는 아내를 뒤따라 2018년 한국에 들어왔고, 두 사람은 경북 김천시 한 요양병원에서 요양보호사로 일했다.

주로 치매 환자부터 노인, 중증 환자 등을 24시간 돌봤다. 육체적·정신적으로 힘들었으나 숙식이 제공되는 요양보호사는 이씨 부부에게 최적의 직업이었고, 힘들 때마다 부부는 서로 의지하며 버텼다.

이씨 부부는 요양보호사로 일하며 회복 가능성이 희박한 중환자들이 연명치료를 받으며 고통스럽게 삶을 이어가는 모습과 가족 모두가 심리적·경제적으로 고통받는 모습을 지켜봤다.

이에 아내는 종종 남편에게 "다른 가족들에게 짐이 되기 싫으니 나중에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는 하지 말자"고 했다.

아내는 부부간 대화에 그치지 않고 자녀에게도 "나중에 내가 아프더라도 연명치료는 하지 말아라"고 일렀다.

말이 씨가 됐을까. 2019년 5월29일 오후 1시께 아내가 쓰러진 채 발견됐다.

이씨는 빈 병실에서 땀과 눈물을 흘린 상태로 알 수 없는 이유로 의식을 잃고 쓰러진 아내를 발견했다.

이씨는 곧장 아내를 인근 병원으로 이송해 응급치료를 받게 했으나 병명이나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스스로 호흡이 불가능해 인공호홉기 장치인 벤틸레이터가 있는 대구지역 대학병원으로 이송했다.

그러나 병명이나 원인은 나오지 않았고, 의료진은 이씨 가족에게 회복이 어렵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당부했다.

이씨는 이렇다 할 아내의 병명이나 원인이 나오지 않자 같은 달 31일 아들이 사는 천안지역 한 병원으로 옮겼다.

그리고 나흘 뒤 그는 자신의 손으로 아내의 기도에 삽관된 인공호흡장치를 손으로 완전히 뽑아 제거해 저산소증으로 숨지게 했다.

▲ "연명치료 중단해도 사망까지 진료 병원비는 내야" [자료사진]

병원은 이씨를 고발했고, 검찰은 호흡기를 제거하면 아내가 숨질 것을 알면서도 이를 제거해 사망에 이르게 한 혐의로 이씨를 재판에 넘겼다.

◇ "경제적 부담 컸다" 선처 호소했으나…"생명 경시" 징역 5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한 이씨는 아내의 소생 가능성이 없었던 점과 아내가 생전에 연명치료는 받지 않겠다고 밝힌 점, 하루에 20만∼30만원에 달하는 병원비 등으로 인해 범죄를 저질렀다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호소했다.

내국인처럼 건강보험 혜택을 받을 수도 없는데 월급보다 많은 병원비로 인해 경제적 부담이 컸으며, 한국에 사는 아들이 얼마 전 딸을 얻어 집을 사기 위해 적지 않은 대출을 받는 등 넉넉지 않아 자식들에게 부담을 줄 수 없는 상황이라고 했다.

특히 이씨 측은 아내가 죽음에 이른 데에는 '병원 측 과실'도 있다는 주장을 폈다.

사건 당일 오전 9시30분께 간호사가 보는 앞에서 호흡기를 뗀 뒤 의료진 제지로 중환자실에서 빠져나온 뒤로 의료진이 인공호흡장치를 다시 삽관하지 않는 등 응급조치를 하지 않아 아내가 30분 뒤 사망했다고 주장했다.

이씨 측 변호인은 "'장치를 삽관하라'는 담당 의사와 '보호자가 재삽관을 거부한다'는 다른 의료진 간 의견 충돌로 피해자가 응급조치를 받지 못했으나, 이씨는 재삽관을 거부한 사실이 없다"고 변론했다.

이씨 측은 의료진 과실을 탓하기보단 양형 참작 사유로 고려해 달라며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해달라고 호소했다.

반면 검찰은 연명치료 기간이 일주일에 불과했던 점과 합법적인 방법으로 연명치료 중단이 가능한 상황이었던 점에 주목했다.

검찰은 병명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다른 병원에서 추가로 검사를 받아보지도 않고, 섣불리 소생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한 건 비상식적인 행동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씨는 "요양보호사로 오래 일했기에 상태만 봐도 안다"고 반박했으나 검찰은 "전문 의료인도 아닌 피고인이 판단할 일이 아니다"라고 되받아쳤다.

검찰은 '뇌 손실을 단정하기 어렵다'는 소견도 있는 데다 이씨 가족이 병원 측에 연명치료 중단 가능 여부를 문의하고도 법적 절차를 기다리지 않은 점도 문제라고 봤다.

2년가량 루게릭병으로 인공호흡기에 의지하던 남편의 호흡기를 제거해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은 판례를 들어 더 강한 형이 내려져야 한다며 징역 7년을 구형했다.

배심원 9명은 모두 '유죄'라고 판단했다.

양형은 배심원 5명이 징역 5년을 선택했고, 3명은 징역 4년, 1명은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을 선택했다.

재판부는 "인간 생명은 가장 존엄한 것으로서 가치를 헤아릴 수 없다"며 "국민참여재판 도입 취지에 따라 배심원 의견을 존중해 징역 5년을 선고하며, 도주 우려가 있어 법정구속한다"고 밝혔다.

김선일 기자  press@sul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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