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칼럼] 상선약수(上善若水)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양보하고 희생하는 물처럼…정치권은 왜 이같은 교훈을 망각하는가?" 서울투데이 기자l승인2016.06.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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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투데이=퍈집부 정리] 논어 옹야(雍也)편에 공자님은 일찍이 '인자요산 지자요수’(仁者樂山 知者樂水)'라 가르치고 있다.

▲ 서울투데이 김중근 회장.(자료사진)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한다. 어진 자는 고요하고, 지혜로운 자는 움직인다. 어진 자는 오래 살고, 지혜로운 자는 즐긴다." [仁者樂山 智者樂水 仁者靜 智者動  仁者壽 智者樂]

이는 "지혜로운 이는 물을 좋아하니 어짐이란 고요하고(靜) 지혜란 움직이는(動) 것이어서, 거기에 즐거움(樂)과 생존(壽)이 있다"는 뜻이다.

나 자신이 무척 좋아하는 교훈이면서 '인자(仁者)'나 '지자(知者)'에 도달하기에는 턱없이 멀게만 느껴지는 것이겠지만, 산과 강을 좋아하는 터라 가끔씩 산과 강을 찾을 때면, 30여년이 넘는 세월 고군분투 속에 언론인 길을 걸어 오면서 무슨 일을 해왔는지, 무엇을 남길 수 있는지 새삼 고민하게 된다.

노년의 공자는 강가에 서서 '흐르는 것이 이와 같구나, 낮밤으로 쉬지도 않는구나' 하고 탄식했다. 흐르는 물은 우리도 저와 같이 흐르고 흘러 언젠가 다른 세상으로 흘러갈 것임을 깨닫게 했다.

이에 산은 거기 깃든 것들을 품어주는 자애로운 어머니이자, 엄하고 우뚝한 아버지를 표상했고, 인생사의 화탕지옥에 지친 이들은 산으로 숨어들었다. 산과 강은 인생을 살아가는 지혜와 사랑의 원천이었다.

또한, 노자는 도법자연(道法自然) 즉 '도(道)는 자연에서 본받는다' 다시 말해 '진리는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고 했다.

여기에서 '자연(自然)이란 명사로서의 Nature의 뜻이 아니라 스스로(自) 그렇게 한다'(然)라는 뜻이라 하겠다. 예를 들어, 물이 위에서 아래로 흐르는 것, 이것이 물의 자연 현상이라고 깨달은 것 처럼 말이다.

만약 흐르는 물을 막아서 댐을 만들거나 위로 뿜어 올려 분수를 만드는 것은 '인위(人爲)'인 것이다. 물이 저절로 흘러가게 하는 '무위(無爲)'가 바로 '자연(自然)'인 것이다.

이러한 자연 현상에 만물의 이치, 삶의 도리와 지혜가 담겨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도(道)'는 자연에서 본받는다'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노자는 상선약수(上善若水) 즉 '최고의 선(善)은 물과 같다'라고 설파해 물의 자연현상에서 선(善) 즉 도(道)를 찾으려 한 것이다.

그래서 노자의 철학을 '물의철학' 또는 '무위(無爲)철학' 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상선약수'는 한 마디로 물처럼 살라는 것이다. 어떻게 해야 물처럼 살 수 있을까?

완당전집에 실린 추사 김정희의 편지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이 산(금강산)에 들어가는 사람은 또한 놀이하는 방술(方術)이 있는데, 신선의 놀이(仙遊), 선가의 놀이(禪遊), 유자의 놀이(儒遊) 세 가지이다.

'인산지수(仁山智水)와 옥약금추(玉籥金樞)와 화엄누각(華嚴樓閣)'은 모두 그 성(性)에 가까운 것으로 경우에 따라 다를 뿐, 산은 본디 다름이 없다.

'옥약금추'는 도가의 양생법에 관한 말 같은데 일단 접어두고, 인산지수는 仁者樂山 智者樂水(인자요산 지자요수)를 합친 말이다.

이 말에 대한 '한시외전(韓詩外傳)'의 해석이 사뭇 재미있다. 지혜로운 자가 물을 좋아하는 이유는? 물은 순리를 따라 흐르되 작은 빈틈도 놓치지 않고 적셔드니 지혜를 갖춘 자와 같고, 아래로 흘러가니 예를 갖춘 자와 같으며, 깊은 곳도 머뭇거림 없이 들어가니 용기를 가진 자와 같고, 막혀서 갇히면 고요히 맑아지니 천명을 아는 자와 같고, 험하고 먼 길을 흐르면서도 남을 허물어뜨리는 법이 없으니 덕을 가진 자와 같기 때문이다.

어진 자가 산을 좋아하는 이유는? 산은 만인이 우러러보는 대상이다. 초목이 그곳에서 나서 자라고 만물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새들이 모여들고 짐승이 쉬어 간다. 사람들은 그곳에서 이익을 취한다. 천지의 중간에 우뚝 서 있는 산에는 구름과 바람이 불어 인다. 천지는 이로써 이루어지고 국가는 이로써 안녕을 얻는다. 그래서 인자는 산을 좋아한다.

◇ '만물을 이롭게 하는 물처럼, 남과 세상을 위해 '음덕(陰德)'을 쌓으며 살라'는 것이다.

수선이만물(水善利萬物) 즉 '물은 만물을 이롭게 한다'고 했다. 물은 생명의 근원으로서 자신을 스며들게 해 만물을 길러 주고 키워주지만 절대로 자신의 공(功)을 자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물의 덕목처럼 남과 세상을 위해 '음덕(陰德)'을 쌓으며 살아야 할 것이다.

◇ 다투지 않는 물처럼, 양보와 희생 그리고 순리로써 다툼 없이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수선부쟁(水善不爭) 즉 '물은 다투지 않는다고 했다. 물은 산이 가로 막히면 곡류(曲流)해 멀리 돌아가고 바위를 만나면 할수(割水)해 몸을 나누어 비켜간다.

이처럼 물은 곡류(曲流)하고 할수(割水)하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면서 산이나 바위와 다투지 않으며 흘러간다.

또한 물은 깊은 웅덩이를 만나면 그 웅덩이를 다 채운 다음 뒷물을 기다려 비로소 나아간다. 이와 같이 물은 웅덩이를 건너뛰거나 먼저가려는 무리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서대로 흘러간다. 이러한 물의 자연현상을 보고 '노자'는 부쟁(不爭) 즉 '물은 다투지 않는다'라고 한 것이다.

노자는 물 흐르듯이 자연스럽게 하지 못하는 것, '무리하는 것', '억지를 부리는 것'을 쟁(爭)이라 했다. '부쟁(不爭)' 즉 다투지 않기 위해서는 산을 돌아가고 바위 앞에서 자신을 나누면서 가는 물의 희생, 덕목이 절대 필요하다 하겠다.

또한 웅덩이를 건너뛰거나 뒷물이 먼저 나가는 무리나 억지를 부리지 않는 물의 덕목이 절대 필요하다하겠다. 이러한 물의 덕목처럼 양보와 희생 그리고 무리나 억지를 부리지 않고 순리대로 세상을 살아야 할 것이다.

◇ '가장 낮고 넓은 바다처럼, 겸손과 포용의 덕목을 지녀라' 하는 것이다.

수선처중인지소오(水善處衆人之所惡) 즉 '물은 모든 사람이 싫어하는 낮은 곳으로 흐른다'고 했다. 물은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좁은 곳에서 넓은 곳으로 흐르는 본성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본성을 따른 가장 낮은 물이며 넓은 물은 강을 거슬러 바다이다. 바다는 가장 낮기에  계곡물에서부터 강물까지 다 받아들인다.

또한 가장 넓기에 깨끗한 물, 더러운 물 할것 없이 다 받아들인다. 그래서 '바다'이다. '바다가 모든 강의 으뜸이 될 수 있는 것은 자신을 더 낮추기 때문이다'라고 했다.

'산보다 높은 것은 없고 바다보다 넓은 것은 없다. 그러나 높은 산은 바다를 포용할 수 없지만 넓은 바다는 높은 산을 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처럼 바다 즉 물은 자신을 낮추는 '겸손'의 덕목과 모든 것을 다 끌어 앉는 '포용'의 덕목을 지니고 있다 하겠다. 이러한 바다의 덕목처럼 자기 자신과 남에게 항상 겸손하고 모든 사람을 포용할 줄 알아야 할 것이다.

◇ '강(剛) 유(柔)의 성질을 모두 지닌 물처럼 '외유내강(外柔內剛)' 하라'는 것이다.

물은 강, 유(剛, 柔)의 성질을 모두 지니고 있다. 겉으로 나타난 물의 성질은 한 없이 부드럽기(柔)만 하다.

네모 그릇에 넣으면 네모 모양이 되고 둥근 그릇에 넣으며 둥근 모양이 되니 물보다 더 부드러운 것은 없다 하겠다. 또한 물은 부드러움 속에 가장 단단한(剛) 본성을 숨기고 있다.

시멘트도 물을 만나야 딱딱한 콘크리트가 되고, 밀가루도 물을 만나야 반죽이 되고, 비가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이 물을 통하지 않고서는 어느 것도 굳게 되지 못한다.

이러한 강, 유를 모두 지닌 물의 성질처럼 '외유내강(外柔內剛)'의 성품과 부드러움과 강함을 모두 갖춘 리더십을 지녀야 할 것이다.

◇ '산처럼 꿋꿋한 인의(仁義)와 물처럼 막힘없는 지혜(智慧)를 지녀라'하는 것이다.

공자의 인자요산(仁者樂山) 지자요수(知者樂水) 즉 '인자한 사람은 산을 좋아하고, 지혜로운(어진) 사람은 물을 좋아한다'고 했다.

그러므로 평생학습과 자기수양으로 우뚝선 산처럼 꿋꿋한 '인의(仁義)'를 지니고 막힘없이 흐르는 물처럼 만사에 막힘없는 '지혜(智慧)'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작금의 정치권이 이같은 옛 성현의 말씀을 한 마디만 명심하고 제대로 지킨다면 우리의 미래는 달라지기 시작할 것이다.

제20대 국회가 시작됐지만 저마다 '새로운 변화'를 외치면서도 법정 시한을 넘기면서까지 아직도 원구성 조차 이루지 못하고 책임전가에만 급급한 채 전과 한 치 다를바 없는 작태를 보이고 있다.

우리 국민 대다수는 지금 과거 정치와 무엇이 달라질 것인지 기대할 것도 보이지 않은 채 날로 살기 힘든 퍽퍽한 생활의 연속인 가운데 무엇을 본보기 삼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캄캄하다. 그냥 스스로를 되돌아 볼 어떤 것도 없이 '그저' 산다.

사회 곳곳에서 사건·사고가 난무하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세상은 점점 험악하게 변해가고 있다. 학교에서 제자가 선생님을 집단폭행 하는 것이 예사로 여겨지고 있고, 지나가는 행인을 아무런 이유 없이 무참하게 살해하는 참극들이 연일 발생하고 있다.

세상이 어찌 변해가던지 말던지 정치권은 오로지 힘겨루기로 기득권 싸움으로만 일삼으며 말로만 민생을 핑게 삼는다.

산사태가 나서 하루 아침에 집이 흔적없이 사라지고 사람이 죽으면 보험사에서 보상금을 줄 것이며, 물놀이는 워터파크에서 하는 것이고 녹조로 썩어가는 강은 쳐다보지 않으면 된다.

우리가 성냄으로 서로 더 갖기를 위해 이렇게 다투다보면 결국엔 '마지막 나무가 사라진 후에야, 마지막 강이 더럽혀진 후에야, 마지막 남은 물고기가 잡힌 후에야' 깨닫게 될 것이다.

'돈을 먹고 살 수는 없다'는 분명한 사실과 위정자들 개개인의 권세와 명예는 민초들의 고단한 생활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것을 말이다.

자연에서 얻었던 인생의 교훈은 텔레비전 화면으로 전해지는 스님과 목사님의 설교로 배우면 되는 것이다.

세기와 종파를 뛰어 넘어 크리족 인디언 추장의 예언과 성경 '욜3:1-8의 행한대로 당하게 하리라' 처럼 이 나라에서도 문자 그대로 실현될 것 같다. "우리는 행한대로 돌려받을 것이다"라는 자명한 진리대로 말이다.

훗날 제대로 된 삶의 족적을 남기고 싶다면 국민의 선택을 받아 자리에 오른 위정자들이 말로만 앞세울 것이 아니라 평가는 국민들이 하는 만큼 정파와 계파를 막론하고 서로 조금만 물러 서서 여유로운 마음으로 오직 국민을 위해 자신의 직분과 행동에 책임지는 하루하루를 살았으면 하고 기대해 본다.

특히 위정자들은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성현들의 고귀한 가르침을 망각하지 말고, 다투지 않는 물처럼 양보와 희생 그리고 순리로써 다툼없이 맡은 바 묵묵히 책임을 다하는 그런 세상을 살라는 것이다.

 

-본지 서울투데이 발행인 겸 대표이사 김중근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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