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와대 직원' 사칭, 前우체국장 출신 70대‥10년간 수억원 사기

한명준 기자l승인2015.03.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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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투데이=한명준 기자] 전직 우체국장 출신 70대 남성이 '청와대 직원'이라고 속여 한 사업가에게 접근해 10년 넘게 수차례에 걸쳐 수억원을 뜯어낸 70대가 경찰에 덜미를 잡혔다.

17일 서울 도봉경찰서에 따르면 이번 사건의 시작은 1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타이어 대리점과 유아복 사업을 하며 성공한 사업가 A씨는 서울 강북구의 헬스클럽에서 민모(71)씨를 처음 만났다.

당시 지역의 한 우체국에서 우체국장으로 근무하다 퇴직을 앞두고 있었던 민씨는 항상 멀끔한 양복 차림이었고 언변도 화려했다. 연 매출 100억의 재력가 A씨도 스물살 가까이 나이가 많은 민씨에게 마음을 열고 가깝게 지냈다.

퇴직 후 마땅한 일자리를 찾지 못했던 민씨는 자신을 믿고 따르는 A씨 앞에서는 대단해 보이고 싶었다. 그러던 중 자신이 김대중 정권에서 공을 세운 한 국회의원에게 스카웃돼 청와대에서 일하게 됐다고 허풍을 떨었다.

의심할법도 한 거짓말을 A씨는 철석같이 믿었다. 이때부터였다. 한번 시작된 민씨의 거짓말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민씨는 청와대 소속 정보담당으로 국정원과 국무총리실에서 일한다고까지 말했다.

급기야 청와대 외곽으로 나오게 됐는데 예산이 편성되지 않아 사무실 운영 경비가 없다며 1500만원만 빌려주면 나중에 갚겠다고 속여 A씨에게 돈을 뜯어내기 시작했다. 민씨는 이런 식으로 2700여만원을 받아서 썼다.

민씨의 범행은 2004년 A씨가 마사회 장외발매기 사업에 18억원을 투자했다가 인허가 사업이 취소돼 실패하면서 더욱 대범해졌다.

행정소송을 진행하려는 A씨에게 민씨는 마사회장에게 압력을 행사하는 등 자신의 권력과 인맥을 동원해 행정소송에게 A씨가 이길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속였다.

민씨는 A씨가 의심하지 않게 하기 위해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주변에서 A씨를 만나기도 하는 등 치밀함도 보였다.

일면식도 없는 경기도의원과 이명박 대통령의 처남을 거론하며 그들과 청탁할 수 있을 정도로 가까운 사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A씨와 함께 대학원을 다니기도 한 민씨는 실제 친분이 있었던 당시 현직 기무사령관을 소개시켜주면서 A씨를 안심시켰다.

민씨가 실질적으로 준 도움은 하나도 없었지만 다행히 A씨가 행정소송에서 승소하는 등 일이 잘 풀려 의심을 피할 수 있었다.

그렇게 민씨는 A씨에게 2011년 3월까지 로비와 접대비 명목으로 총 450여회에 걸쳐 7억여원을 받아 챙겼다.

A씨는 사업 실패로 돈이 없자 공직생활을 마치고 건실한 사업체를 운영하는 매형에게 빌려서까지 민씨에게 돈을 쥐어줬다.

그러던 중 과도하게 많은 돈을 A씨가 요구하자 A씨의 매형이 지난해 11월 청와대와 국무총리실, 국정원에 실제 민씨가 재직 중인지 민원을 넣으면서 민씨의 10여년 넘는 사기 행각은 들통이 났다.

놀라운 것은 민씨가 근무하지 않는다는 회신을 받은 매형은 이 사실을 A씨에게 알렸지만 A씨는 여전히 반신반의했다는 것이다.

10년 넘게 민씨를 믿고 의지했던 A씨는 민씨가 경찰 조사에서 범행을 시인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민씨의 실체를 똑바로 알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그 충격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경찰은 민씨를 상습사기 혐의로 구속하고 서울북부지검에 사건을 송치했다고 밝혔다.

민씨는 경찰 조사에서 "채무가 있었고 생활비가 부족해서 그랬다"고 진술했다. 7억여원 중 현금으로 인출한 80% 금액의 사용처에 대해서는 진술을 거부했다.

A씨는 "사업에 실패하고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다며 "민씨에게 투자를 멈출 수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민씨는 사실 직업도 없고 유사 전과 3범일 뿐"이라며 "A씨가 18억 투자 실패로 실의에 빠져 이성적인 판단을 할 수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경찰은 여죄가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한명준 기자  press@sultoday.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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